치매증상 중에서도 망상 증상을 보일 때, 돌보는 가족이나 돌봄 종사자들이 가장 힘들어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망상은 실제와는 다른 생각을 확고하게 믿는 게 문제입니다. 흔히들 이런 증상을 보일 때, 실제는 그것이 아니라고 설득하거나 고치려 하게 될 텐데요. 지적하고 고쳐주려고 하면 할수록 증상은 오히려 악화되고 반감만 생기게 됩니다.
그동안 현장에서 부딪히며 방향을 찾아갔던 경험담들을 풀어보겠습니다.
프로그램 참여 중인 어르신
망상의 종류
망상이란 사실과 다른 것을 실제라고 본인이 어떤 신념처럼 확고하게 믿는 증상입니다. 망상의 증세는 다양하게 나타나는데요. 그중에 몇 가지만 나눠보면 "내 물건을 누가 훔쳐갔다"라고 여기는 도둑망상, "배우자가 바람피운다"는 질투망상, "누군가로부터 큰 피해를 입었다"는 피해망상,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과대망상이 많이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요양시설에 오신 어르신들 중 거의 60~70% 정도가 다양한 망상증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제가 요양시설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던 때의 일화들을 예로 들어볼게요.
1. 도둑망상
손 00 어르신은 늘 무언가를 찾고 다니십니다.
"뭘 찾으세요?" 여쭈면 "분명히 여기 아들이 주고 간 돈이 있었는데 안 보인다" 하시며 여기저기 찾으시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이 "키 큰애가 훔쳐갔다"라고 확고한 어조로 말씀하십니다. "키 큰애는 누구예요?" "응, 예전에 같이 일하던 친구인데... 손버릇이 안 좋아." 이 행동을 하루 걸러 되풀이하십니다.
때로는 "통장이 안 보여" 하시며 여기저기 뒤지고 다니십니다. 외아들이 보호자로서 돈관리를 해오고 있었는데요. 그 통장은 연금통장이고 아들이 카드발급해서 관리하니 사실 통장은 있으나마나 하지요. 그런데도 어르신은 통장만 가지고 있으면 돈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시나 봅니다. 그래서 그 통장을 소중히 간직하십니다. 너무 소중해서 숨겨놓고는 기억을 못 하시고 허구한 날 또 찾고 찾는 일을 반복하시는 겁니다.
어느 날은 심각하게 "경찰에 신고하러 가야 하니 같이 가달라"고 도움을 청하기도 하십니다.
물건을 잃어버렸다거나 누가 훔쳐갔다고 할 때 주의할 점은, "아고, 어르신 또 그러시네. 그게 뭐 그리 좋은 거라고 훔쳐가요?" 하며 부정적인 반응이나 호응을 해 주지 않으면 화를 내시거나 공격적인 행동으로 일이 더 커질 수 있어요.
"어머 없어졌어요? 같이 찾아볼게요." 하며 어르신의 증상을 받아들이고 함께 해결해보고자 하는 진정성을 보여주시는 게 좋아요. 또 주변의 사람들이 도와준다고 혼자 발견하고선 "찾았어요. 여기에 있었어요."하고 "툭" 건네드리면 더 의심을 하게 돼요. 반드시 찾다가 찾는 목적물이 보이면 어르신이 직접 찾아 손으로 집도록 해드리는 것이 가장 안전하더라고요. 그래야 어르신이 안정을 찾고 한동안은 잠잠해져요.
2. 피해망상
김 00 어르신은 누군가에게 쫓긴다는 망상을 갖고 피해의식이 큽니다.
보호자로부터 들은 정보로는 예전에 친척에게 보증을 서 주고 금전적으로 정신적으로 피해를 본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친척이 사금융권에서 어르신의 보증으로 돈을 빌린 후, 갚지 못하자 금융권에선 어르신에게 빌린 돈을 갚으라고 상당한 압박을 가한 것입니다. 벌써 오래전 얘기고 이미 다 해결이 되었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그때의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해결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계속 피해망상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어르신이 계시던 요양원 건물은 4층이었습니다.
어르신은 "지금 나를 추격하고 감시하는 자들이 자동차를 타고 전방의 불을 켜서 4층 요양원을 비추고 있다"라고 몸을 움츠리며 불안해하셨습니다. 그때는 낮이었는데 무슨 자동차에 라이트를 켭니까? 말도 안 되는 얘기를 그렇게 하셨습니다. 또는 그들이 어르신을 감시하느라 도청장치와 몰래카메라를 설치해놓고 보고 듣고 있다고 확고하게 믿는 겁니다. 그래서 옷을 갈아입을 때, 불도 안 켠 채 캄캄한 화장실 안에 문을 닫고 들어가 옷을 갈아입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그 상황에 대해 괜스레 개입해서 현실을 인식시킨다거나 설득해보려 하지 않고 부정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으며, 그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면 지나가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 증상이 지속된다면 의사와 상담해서 망상을 조절하는 약을 처방받는 것도 방법입니다.
3. 직업망상
최 00 어르신은 오랫동안 신발공장을 다니셨다 합니다. 기술자로서 꽤나 인정을 받으셨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셨습니다. 그 어르신은 아침인지 오후인지 구별하지 못하고 "출근하러 나가야 한다" "지금 나를 기다리고 있다"하시며 아직도 예전 직업전선에 있다고 생각하셔서 붙잡느라고 애를 먹은 기억이 납니다.
어르신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주의를 환기시켜야 하는데요. 대부분의 어르신들에게 잘 받아들여지는 산책을 권하거나 사진첩을 함께 보자고 하는 것으로 유도하면 상황을 벗어나게 됩니다. 각자 살아오신 환경에 따라, 성품에 따라 좋아하시는 부분들이 다르므로 그것을 찾아내어 유도하는 것에 답이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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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00 어르신이 다니던 공장에서는 점심시간이면 노래자랑을 자주 했다 해요. 어르신 말로는 분위기메이커로 노래했다 하면 1등 상을 휩쓸었다고 자랑하시는 흥이 많은 분이셨어요. "노래자랑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최 00 어르신, 먼저 한 곡 하시지요?" 하고 가짜마이크를 건네드리면 빼지도 않고 신이 나서 노래하시며 앞의 상황은 어느새 잊어버리십니다.
현실과 벗어난, 사실과는 다른 생각을 굳게 믿고 있는 치매어르신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불안, 초조한 가운데 스스로도 고군분투하면서 싸우고 있는 겁니다. 거기에 가족이나 돌봄 종사자들이 현실은 그게 아니라고 설득하고 주입시킨들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이런 증상을 나타낼 때 주변사람으로부터 지적받거나 비난을 받고 또 가족들이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서로의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런 증상은 더욱 심해집니다. 그러므로 치매어르신들의 망상행동을 부정하고 논쟁하기보다 함께 수용하고 타협점을 찾아간다면 분명히 개선점이 보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