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부모님이나 배우자 등 가족 중에서 정상적인 사람으로서는 하지 않는, 할 수 없는 행동을 지속적으로 행하는 것을 목격한다면 어떻게 대응하실 건가요? "아니, 왜 이러시는 거예요?" 정색하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하실 건가요? 보통 처음 직면할 때면 당연히 그러실 겁니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치매환자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문제행동 또는 정신행동증상이라고 하는 한 부분으로서 고쳐보려고 지적하고 윽박지르면 수정되지 않고 오히려 증상은 더 심해집니다.
제가 치매 전담 방문요양보호사로서 경험했던 일화입니다.
한 가을(가명) 어르신은 치매로 장기요양보험 5등급을 받아 저와 인연을 맺게 되었지요. 처음 그 댁을 방문했을 때, 강렬한 냄새가 온 집안을 덮고 있었습니다. 향수도 아닌 것이 너무 진하니까 구토가 날 것만 같았습니다.
아우~ 웬 냄새?
'이것이 도대체 어디서 나온 냄새일까?' 근원지를 찾아보니 그것은 바로 "섬유유연제" 때문이었습니다. 섬유유연제를 적당히 쓰면 섬유도 보호하면서 세탁물에서 은은한 향기를 풍기게 되는데 그 집에서는 세탁기에서 나온 세탁물이 얼마나 섬유유연제를 많이 뒤집어썼는지 "끈적끈적"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많은 양을 사용하셔서 그런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어르신은 유연제 넣은 것을 잊어버리고 연거푸 넣고 또 넣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세탁물이 몇 가지라도 있다면 그것을 참지 못하고 세탁기를 사용합니다. "섬유유연제는 넣었으니 이제 안 넣으셔도 돼요." 아무리 말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몸은 얼마나 날렵한지요. 제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재빠르게 유연제를 또 넣고 오십니다.
유연제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기고 퇴근했습니다. '이제 그 냄새에서 벗어나겠구나' 하는 안도감으로 그다음 날 방문하니 "웬걸" 또 그 냄새에 머리가 찌근거립니다. 어르신은 유연제가 보이지 않으니 날듯이 날렵하게 집 앞 편의점으로 달려가 유연제를 사 온 뒤, 넣고 넣고 또 넣고. 하~
1Kg 섬유유연제 하나면 저희 집에선 6개월 이상 사용하는데 이 어르신은 며칠 가지 않아 빈 통으로 널브러져 있습니다.
현장 사진
반복되는 문제행동은 고쳐질까?
이번엔 머리를 짜내어 세탁물 넣는 세탁기 뚜껑에, A4용지에다 큰 글씨로 '섬유유연제는 한 번만 넣기'라고 쓴 다음 코팅까지 정성스럽게 해서 붙여놓았습니다. 세탁기 사용할 때마다 스티커를 부착하고 유연제를 넣도록요. 그러면 그 스티커를 보고 '이미 넣었구나' 확인을 하고 그 문제의 행동이 그칠 줄 알았습니다. 예행연습도 해보았으나 결국 이것도 실패!
이런 문제행동은 각 치매 정도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교육이나 훈련을 통해서 나아지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문제를 지적하기보다는 왜 이런 현상이 생겼는지 숨겨진 원인과 감정을 파악해 보았습니다.
한 가을(가명) 어르신은 세탁물에서 나는 냄새와 또 세탁세제의 냄새가 아주 싫다고 해요. 섬유유연제를 꼭 넣어야 좋지 않은 냄새들이 없어진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보니 혹시 유연제 넣는 걸 잊지 않았나 하는 불안에서 생긴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섬유유연제를 필요 이상 많이 사용한 옷을 입게 되면 피부트러블이 날 수 있고 가려움증 등으로 고생하시니까 세탁은 제가 할게요. 그동안 어르신은 이것 좀 도와주시겠어요?" 콩나물이나 쪽파 등 식재료 다듬는 것으로 유도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없애고 심리적으로 안정을 갖도록 해드렸습니다. 또 언제나 세탁물이 남아있지 않도록 하는 것도 잊지 않았지요.
반복하는 말
어르신은 참 사랑스럽고 정이 많으신 분이었어요. 제가 퇴근할 때면 항상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나와 복도에서 "언제 또 올 거야?" 하시며 물어보길 수도 없이 되풀이하십니다. "내일 또 와요'" 대답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누가 보면 '무슨 사연 있는 이별인가 보다' 할 만큼 헤어지는 발걸음을 무겁게 합니다. 아파트 4층에 서서 제가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며 "언제 또 올 거야?" 외치시는 모습은 수년이 흐른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