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행동하기요

나의 이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글로 남겨 봅니다.

무지함으로 상대에게 서운한 감정을 느끼고, 그로 인해 상처를 주고받으며 오랜 시간을 후회로 점철된 나날을 보내는 나 같은 사람들이 다시는 나오지 않길 바라는 심정입니다.

 

벌써 십수 년이 지난 이야기입니다. 저는 맏며느리로서 홀로 되신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평소 늘 정갈하신 모습에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 하지 않는 점잖은 성품이셨습니다. 그런 어머니에겐 지병인 고혈압과 또 이웃인 당뇨까지 있어 오래도록 약을 복용하고 계셨지요. 그러던 어느 날인가부터 어머니가 평소에 보이지 않던 행동을 하시는 겁니다.

 

산책하는-노인
저와 함께 산책 중 찰깍

 

예상 밖 어머니의 행동

어느 날, 두통이 날 정도로 가스냄새가 집 안에 진동했습니다. "이게 무슨 일?" 부엌으로 뛰어가 보니 어머니가 조리 중인 가스레인지 화구에서는 불이 붙고 있는데 그 옆 화구에서는 가스레인지 점화손잡이가 열린 채 불은 붙지 않고  "쉬~익" 소리까지 내면서 가스가 새고 있었습니다. "화들짝" 놀라 먼저 모든 점화손잡이를 돌려 잠근 후, 집안의 문과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열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아차! 하는 순간에 집 전체가 폭발할지도 모를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그런 상황인데도 어머니는 "왜 그리 호들갑이야!" 정도로 영문을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사건인즉슨, 어머니가 조리를 마친 후 가스 점화손잡이를 돌려서 잠그는 것은 잊은 채, 가스밸브만 차단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괜찮습니다. 일단 가스는 새지 않는 상태니까요. 그러나 그다음이 문제인 거죠. 다시 가스레인지를 사용할 때 열려있는 손잡이가 아닌 다른 손잡이를 잡고 열어 사용하면 그 옆의 열려있는 화구에서는 가스가 그냥 새어 나오는 거지요. 그 당시에는 가스자동차단기나 안전가스레인지가 나오기 전이었습니다.

 

불같이 화내는 어머니의 성격변화

처음 그 일이 있었을 때는 '어쩌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며 어머니가 무안해하실까 봐 적당히 넘어갔습니다만 냄비를 까맣게 태우는 일이 잦아지고, 또다시 두 번째 가스 사건이 되풀이되었을 때는 '이거 큰일 나겠구나' 하는 마음에 어머니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알아듣게 설명을 해드리려 했지만 나도 모르게 흥분한 감정이 어머니에게 전달되었고 어머니는 '나를 책망하는구나' 하고 느끼시는지 "욱"하여 제 말은 다 듣기도 전에 도리어 막 불같이 화를 내시는 겁니다. 이전엔 결코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습니다.

 

"야! 너, 내가 늙었다고 정신 나간 늙은이 취급하는데 그래도 내가 아직까지는 너보다 훨씬 낫다고!"

"너, 조상님 제삿날 다 기억하냐? 네 아들 몇 날 몇 시에 태어났는지 아냐? 나는 00도, 00도 다 기억해!"

아휴~ 되로 주고 말로 받았습니다. 가끔 건망증세를 보이던 저로서는 할 말을 잊었지요.

 

그때가 치매 전조증상이었는데 꿈에도 몰랐습니다. 어머니 말씀같이 옛날 기억들을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치매는 가장 가까운 사건,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제 일이 기억나지 않아도 1,2년 전 일이나 옛날 일들은 기억하기 때문에 내가 미워서 억하심정으로 저러신다는 서운한 맘을 갖기 쉽습니다.

 

치매 환자 중에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알츠하이머 치매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 분들의 뇌 부분 중에 단기기억을 맡고 있는 '해마'라는 곳이 손상을 입으면서 금방 들은 것이 새롭게 입력이 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금방 들은 말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는 다시 물어보고, 자신이 한 말도 잊어버리는 이런 현상이 반복됩니다. 그러나 예전에 이미 장기기억으로 저장되어 있던 것은 아직 손상되지 않아 기억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최근 기억부터 사라지는 것입니다.

 

치매인 줄 몰랐던 무지함

급기야 어머니는 뇌졸중으로 쓰러지셨고 치매는 점점 더 진행되어 갔습니다. 그 당시 저는 직장이 있었기에 간병인을 두었습니다만 어머니의 공격적인 언사와 의심 등으로 하루, 이틀을 버티지 못하고 나가시는 일이 몇 차례 반복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직장도 내려놓고 평소에는 저더러 "잘 걷지 못하는 나에게 손, 발이 되어줘 너무 고맙다"하시는 표현도 잘하셨습니다.

 

그러다가도 자녀들에게 전화해서 제가 하지도 않은 얘기를 했다고 모함하면 시누이들은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어머니 말을 그대로 믿어버리니 저를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렇게 저는 상처만 쌓여가면서도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약해지시니 성격이 예민해져서 그러시는 거야.' 나 스스로를 위로하며 때때로 치밀어 오르는 울분도 그저 꾹꾹 눌러 참아견디기만 할 줄 알았지 그때까지도 치매증상인지 몰랐던 멍청이에 불과했습니다.

 

그 후로는 밤낮이 바뀌어 새벽에도 소리소리 지르며 불러대거나 "천정에 개들이 꽉 찼네" 하시는 환각증상이 나타나고, 방금 이부자리 갈아드렸건만 답답하다며 기저귀를 빼어 던지시니 방 안은 처참한 상황이 연출됩니다. 이때는 누가 봐도 치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고 몸은 몸대로 지쳐갈 즈음 알게 되니 통탄할 노릇이지요.

 

치매 말기에는 연하곤란이 찾아와 음식물 삼키기가 어렵습니다. 거의 누워서만 지내시고 죽으로 시작해서 미음으로 변해갑니다. 몸을 가누기 힘드시니 일으켜 앉힌 후 뒤에서 안아 음식물을 떠먹여 드리는데 가끔 "나, 빨리 죽으라고 여기에 약 탔지?" 하며 눈을 "희번덕" 뜨시고 바라보실 땐 치매로 인해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사전지식이 있어 예측가능한 대처능력이 있는 경우와 막상 처음 당해보는 입장이 되면 상당한 충격을 받습니다.

 

이렇듯 환각이나 피해망상증상이 빈번하게 나타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나마 어쩌다 보였다가 잠깐이면 사라지는 가족들은 애써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엄마가 치매라고? 그럴 리가 없어!" 모시고 밀착생활하는 저에게는 그것도 상처가 됩니다.

 

후회와 상처만 남아

진작 치매초기부터 알았다면 어머니도 저와 가족들도 질병으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이라 인정하고, 예기치 않았던 행동변화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상처가 되지 않았으련만 무지하니 약도 없습니다.

 

이렇듯 가족 중 치매환자가 있다면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되거니와 가족관계에서는 치명타를 입습니다. 서로 원망, 불평, 서운함으로 얼룩집니다. 그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좀 더 잘해드리지 못한 것에 두고두고 마음만 아플 뿐이지요. 그래서 죄송한 마음에 어려움에 처한 어르신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뒤늦게 복지시설경영을 전공하게 되었고. 못다 한 효도를 어르신들에게 봉사하면서 복지시설경영의 꿈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지 않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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