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살아가면서 터닝포인트가 몇 번 주어집니다. 제 삶에도 예기치 않게 찾아온 한 차례의 터닝포인트가 결국 내가 블로그를 하는 이유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동냥하는 할머니와의 만남
점심을 훌쩍 넘긴 시각이었습니다. 외출하면서 따로 식사할 시간을 내지 못해 그날따라 무척 허기졌습니다만 내 가방 속에는 따끈하고 부드러운 시루떡이 있었습니다. "배고픈데 걸어가면서 꺼내 먹을까? 아냐, 품위가 있지 길에서 먹다니 그럴 수 있나! 얼른 집에 가서 먹어야지." 약간의 갈등을 느끼며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전철을 타기 위해 지하도로 내리 달렸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웬 할머니가 계단 참에 앉아 동냥을 하고 있는 겁니다. 나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그 할머니에게 다가가 가만히 옆에 앉았습니다.
"할머니, 여기 따뜻한 떡 있어요. 드시겠어요? " 하고 말을 건넸습니다.
할머니는 말씀은 하지 않고 꾸깃꾸깃한 공책을 꺼내시더니 몽당연필로 어렵사리 적어갔습니다.
철자 무시하고 삐뚤거린 글씨지만 다행히 소통은 가능했습니다.
"이가 제대로 없어서 떡을 먹지 못해요."
안타까운 마음에 "제가 할머니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게요." 하며 마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할머니는 잠깐 머뭇거리시다가 함께 사는 가족은 있는지, 어디 사시는지... 본의 아니게 신상을 털었음에도 순순히 알려주셨습니다.
사연인즉 사업에 실패한 아들이 빚 독촉에 시달려 집을 나가 행방을 알 길이 없는데 급기야 며느리마저 초등학교 저학년인 두 손자를 집에 두고 나가버려 그 손자들 먹거리 해결하기 위해 거리에 나왔다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이런 집안의 급작스런 사태에 큰 충격을 받고 '실어증'에 걸려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위급상황 국가 지원이 필요한 이유
이 사건은 벌써 오래전 얘기입니다.
할머니는 아들이 버젓이 살아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을 받지 못한다 합니다.,
"할머니, 날씨도 쌀쌀한데 손자들 좋아하는 간식 사들고 얼른 들어가세요." 하면서 지갑에 있는 지폐를 몽땅 털어 할머니 손에 쥐어드렸습니다. 할머니는 눈물을 "뚝뚝" 흘리시며 제 손을 잡고 고맙다는 표시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실제 도움이 필요한 위급한 상황임에도 국가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었던 할머니와 같은 사각지대에 놓인 가정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나 한 사람의 도움으로는 한계가 있고, 지속적인 도움과 근본해결 방안은 무엇일까? 고민하며 서울 시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복지 분야를 구석구석 뒤지며 알아보다 "차라리 내가 사회복지분야를 전공해야겠다"는 마음의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뭘 알아야 각기 처한 상황에 따른 도움을 줄 수 있고, 또 보다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는 내가 원해 자발적으로 선택한 길이라서인지 젊었을 적 부모님의 강요로 했던 공부와는 달리 꽤 흥미진진하게 학업에 임했습니다. 복지시설경영을 전공하고 마침내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얻었습니다. 복지시설을 운영해보려는 꿈을 가지고 사회에 나갔지만 현실은 나의 꿈과 거리가 있었습니다. 노인 관련복지사로서 요양원, 재가방문복지센터를 거쳐 요양보호사에 이르기까지 8년간 경험했던 토대로 글을 쓸 생각입니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복지도 상당히 좋아졌습니다. 위와 같은 할머니의 경우는 '긴급복지제도'에 따른 지원을 받을 수 있어요. 다양한 서비스가 있으나 문제는 우리나라는 신청주의라는 것입니다. 신청하지 않으면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어요. 어려움에 처한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주변 친, 인척들, 이웃들도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그들을 위해 신청할 수 있습니다. 생활고 때문에 가족동반자살이나 노인 고독사 등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요. 그런 분들을 발견했다면 그냥 지나치시지 말고 가까운 구청이나 주민센터(행정복지센터)에 연락하셔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시길 권합니다.